아버지는 국수를 참 좋아하신다. 노년이 되신 후에는 약해진 이 때문에라도 국수를 더 많이 찾으셨다. 비빔국수와 된장국수를 좋아하시는데 특히 된장국수는 아버지에게는 당신의 유년기와 청년기가 떠오르는 추억의 음식으로 특히나 좋아하셨다.
된장국수, 아버지의 추억을 이어 어느새 딸에게도 추억이 된 음식
아버지는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수를 어렸을 적부터 무척 많이 먹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고기 넣은 된장국수를 먹을 수 있다지만 당시에는 고기도 흔하지 않았으니 그저 된장 잔뜩 푼 된장물에 국수 넣어 양을 늘려서 7남매 먹이기에 바쁘셨다고 하셨다. 이제는 고기도 듬뿍 넣고 된장국수 끓여 먹을 만도 한데 아버지는 그때 그 맛이 아니라면서 생선육수에 된장만 풀어서 해 드신다. 여기에 국수대신 밥을 넣어 끓이면 그게 바로 된장술밥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고등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후 자취생활을 하시면서 처음으로 요리란 것을 해보셨다. 요리에 재능이 있었던 건지 어머니가 해줬던 된장국수에 뭐가 들어갔는지 눈을 감고도 알았다 하시면서 뚝딱 만들어내셨다고 한다. 나중에는 낚시에 잠깐 취미가 붙었을 때는 바로 잡은 고기를 넣고 된장 풀어 국수를 넣어 어탕국수로도 해 드셨는데 그것도 참 별미 중 별미라 하셨다.
된장찌개를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딸인 나에게 아버지가 된장국수를 끓여줬던 어느 날, 나는 불만 가득하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된장찌개에 왜 국수를 넣었어요? 떠먹을 국물이 없잖아"
이건 된장국물이 흡수된 소면을 먹는 재미가 있는 거라는 아버지의 설명이 귀에도 안 들어오고 국물 때문에 점점 불어 터져 가는 소면이 못 미더운 채 억지로 먹었더랬다.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이제 노년이 되고 나는 중년이 되어 이제 서로 같이 늙어감을 공유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요즘은 매일 한 끼는 꼭 된장국수를 해 먹는다 하시면서 늙어서 그런가 돌아가신 너희 할머니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점심에 아버지는 나에게 된장국수를 끓여주셨다. 지난 세월 동안 나의 입맛은 변한 것인가. 아니면 유독 그날 아버지가 맛있게 끓이신 걸까. 어릴 적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던 된장국물이 흡수된 소면맛으로 먹는 것이 된장국수라는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넘어 딸인 나에게도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음식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이렇게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친정집에 가지 않아도 내가 집에서 생각날 때마다 뚝딱 해 먹는 소울푸드 음식이 되었다. 된장국수 만드는 법이 대단치가 않다. 우리가 늘 먹는 된장찌개에 생소면만 넣으면 끝이다. 대신에 평소 된장찌개 끓일 때 넣던 된장 양을 절반으로 줄여서 넣어야 한다. 소면에도 적당한 짠기가 있기에 된장양이 너무 많으면 굉장히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아이가 나의 소울푸드인 된장국수를 맛있게 먹을 날이 올까. 입맛이 나와는 극명히 다른 아이라 4대째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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